
순수한 이상적 내면세계를 추구한 故장욱진(1917-1990)은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와 함께 한국의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중요한 작가입니다. <무제>는 단순한 화면 속에서 파란 하늘과 빨간 해의 대비 효과가 특히 경쾌합니다. 나무 위에 열을 맞추어 늘어선 집은 유족의 증언에 의하면 원래 나무의 뒤편에 그리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나무의 ‘뒤’가 아닌 나무의 ‘위’쪽으로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장욱진은 주로 가족, 아무, 아이, 새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소재들을 심플하게 담아냈습니다. 그의 삶 자체도 신사실파의 철학대로 ‘사실을 새롭게 보자’는 주제의식을 갖고 사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재된 본질을 추구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대담하고, 순수한 어린아이의 동화같은 장욱진만의 감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입니다. 장욱진 작가를 기리기 위해 양주시가 설립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총 세 점의 장욱진 작품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故김정숙(1916~1991)은 1950년대 한국 초기 추상조각의 개척자로, 한국에 금속조각을 최초로 도입하고, 각종의 첨단적인 조형기법을 시도하였습니다. 작가는 주로 인간과 가족, 모성애 등의 주제를 반추상기법으로 다뤘습니다. 경기도에서 가장 오랫동안 미술관을 운영해온 조각 전문 미술관으로 조각공원이 함께 있는 남양주의 모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작품은 이연수 관장이 많은 사람을 접견하는 집무실에 늘 작품을 두고 있을 만큼 애정이 남다른 작품입니다. 이번 전시의 서두를 여는 김정숙 작가의 작품 <생>을 통해 우리 삶 속에 미술이, 예술이 어떤 의미인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원 장승업(1843-1897)은 조선 말기의 화원으로 안견, 김홍도와 함께 조선의 3대 화가로 불리웁니다. 오원은 호방한 필묵법과 정교한 묘사를 통해 산수화(山水畵), 인물화(人物畵), 화조도(花鳥圖), 영모도(翎毛圖),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 등 다양한 소재에서 생기 넘치는 자신만의 양식을 확립한 천재 화가입니다. 40세를 전후하여 화명이 높아지자 왕실의 초빙을 받아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감찰이란 관직을 제수받았습니다. 사군자 중의 하나인 국화는 늦은 가을에 첫 추위를 이겨내며 피는 꽃으로, 예로부터 군자의 덕과 학식을 갖춘 선비의 인품에 대한 비유 대상으로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해 왔습니다. 비교적 간결하면서도 부드러우나 단숨에 그려낸 필력덕분에 국화라는 소재 자체에 부여하는 상징적 의미가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작품입니다. 동아방송예술대학교에서 설립 운영하는 DIMA M.O.A의 소장품입니다.

‘색채의 마술사’, ‘코발트블루의 화가’로 불리는 故전혁림(1915-2010)은 한국적 색채추상의 선구자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작가입니다. 박생광을 비롯하여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대표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한 용인 이영미술관의 소장품입니다. <새 만다라>를 위해 작가는 5년 동안 목판 1050개의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작품에 쓰인 나무는 한옥의 대들보로 사용하던 나무인데, 이 나무를 구하는 것이 어려워 나무를 구할 때마다 그리다 보니 5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각각의 목기화이기도 하고 또 하나의 커다란 추상적 형태를 지니는 작품으로, 전혁림의 ‘색채 성명서’라는 찬사를 받았고 작가 자신도 작품에 매우 감격스러워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목기들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확장된 공간을 보여주는 동시에 삶의 윤회와 조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故백남준(1932-2006)의 비디오 설치 작품입니다. 버마 체스트(Berma Chest)는 미얀마 스타일의 황금빛 궤의 상단부 서랍을 열면 8대의 소형 모니터에서 영상이 나오고 양쪽 측면에서는 두 대의 프로젝터를 통해 여성의 누드와 백남준과 함께 작업했던 음악가인 샬롯 무어만(Charlotte Moorman)의 퍼포먼스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하단부 2단 서랍장에는 각종 장식품과 드로잉, 사진 등이 담겨있습니다. 궤의 서랍은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동시에 그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풀어놓는 이야기 보따리를 상징합니다.

수화(樹話) 故김환기(1913-1974)는 한국미술사에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작가입니다. 일찍이 일본 유학을 하여 모더니즘(Modernism)에 눈을 떴고, 백만회(白蠻會)를 결성하여 기하학적 추상운동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서와 문인 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한국적 정서의 세계화를 이루어낸 작가입니다. <여름밤의 소리>는 미국 체류 시 '점' 연작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제작된 것으로 그의 회화의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는 시기에 제작된 중요한 작품입니다. 이브 클라인(Yves Klein)의 블루처럼 환기 특유의 청색을 바탕으로 한 오색점의 나열은 그의 후기작의 원형을 이루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내밀한 심적 언어를 형상화하여 무한히 반복될 것처럼 긴장과 화면의 증식을 시도하고 있는 이 작품은 상단의 나열식 점과 하단의 군집된 점이 묘한 대비를 이루면서 김환기 예술의 새로운 변모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또한 청색의 여백과 비어있는 공간의 비례 그리고 점의 위치가 매우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작품으로 김환기 예술의 또 다른 일면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로트렉’으로 불리우는 서산(西山) 故구본웅(1906-1953)은 야수파 화풍에 표현주의를 뒤섞은 복합적인 화법을 구사한 한국 근대 모더니즘의 선구자입니다. 작가는 2살쯤 가정부의 부주의로 마루에서 떨어져 척추장애를 일으켜 불구가 되었습니다. 이후 1923년경 서양의 새로운 회화방법을 교수하던 고려미술원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미술수업을 시작했는데, 그곳에서 서양화가 이종우와 조각가 김복진의 서양식 조형방법을 익혔습니다. 주로 인물화를 그렸는데, 자유분방한 필치의 굵은 선, 대담한 생략과 볼륨이 가득한 면 구성, 색채의 강렬한 대비, 공간에 대한 이지적인 접근이 돋보입니다. <푸른 머리의 여인>은 특히 마티스의 인물 표현같은 야수파적 경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특히 여인의 머리 빛을 청보라색으로 그린 것이 독특한데 하얀 한복을 입은 그 우아한 모습은 여인상 중에서도 최고의 작품으로,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경기도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故유영국(1916-2002)의 <산>입니다. 유영국은 한국 모더니즘 1세대로 현대미술사에 추상미술의 발판을 마련한 작가입니다. 산, 길, 나무 등 자연적 소재를 거시적인 시각으로 보아 추상적인 구성요소로 사용하면서 기하학적 구성과 강렬한 색채를 통해 아름다움과 음악적 울림을 자아냅니다. 간결하면서도 기하학적인 형태의 조화가 절제된 율동미가 돋보입니다. 작가는 한국전쟁 기간 동안 고향에 머물면서 산이라는 소재를 발견했다고 하는데, 그가 그려낸 <산>이 함축적으로 그려낸 자연의 숭고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